추리하는 재미가 있는 블랙웰(Blackwell) 시리즈의 정보 검색과 조합 시스템, 정보도 아이템처럼 활용할 수 있는 레조넌스(Resonance)의 메모리 시스템, 퍼즐의 해법이 여러 개인 프리모디아(Primordia)의 복수 퍼즐 시스템 등, 우제트 아이 게임즈(Wadjet Eye Games)가 21세기 어드벤처 장르계에 (과거 존재하던 전통을 되살려) 가져온 혁신은 정통 어드벤처 게임이 한물간 죽은 장르가 아니라 여전히 큰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장르임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게임 업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기이한 일은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게임을 만들어냈던 회사가 그 후속작들에서는 이전의 창조적 요소를 무시하거나 활용하지 않는 것이다. 미스터리다.
샤드라이트가 우제트 아이 게임즈의 전통을 계승한 미덕은 쉽다는 것이다. 나는 우제트 아이 게임즈의 이 쉬운 철학을 지지하는 찬성파이기에, 단편 소설 읽듯이 진행해나갈 수 있는 샤드라이트의 템포가 반갑다. 이 직전에 어렵고 전개가 느린 데포니아 둠스데이(Deponia Doomsday)를 해서 더 그런 것 같다. 계승하지 못한 점들은 위에서 언급한 고유의 퍼즐 시스템들이다. 그래서 퍼즐과 게임 플레이의 화학 작용이 약해졌다. 이렇게 되면 퍼즐은 퍼즐대로 여흥으로 풀고 스토리는 스토리대로 따로 감상하는 게임이 된다. 샤드라이트에는 여전히 '크~ 이 맛에 어드벤처 게임하지!' 느끼게 하는 좋은 퍼즐이 있었지만, 전작들처럼 정보를 활용하는 퍼즐들이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 석궁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퍼즐이 너무 많았다. 퍼즐의 분배도 고르지 않아 게임 후반부는 사실상 퍼즐이 없는 수준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채택한 게임 배경은 흥미롭지만 깊이 파고들 여지는 많이 없다. 프리모디아와 비교해보자. 프리모디아는 바로 연작 소설집을 내도 될 정도의 깊이 있는 sf 설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설정을 부담스럽게 플레이어에게 들이미는 것은 아니다. 게임 중반 키오스크(컴퓨터)를 이용한 퍼즐을 풀다보면 플레이어는 메트로폴의 진실과 거짓을 저절로 알게 되고 전율하게 된다. 퍼즐을 푸는 행위가 곧 스토리텔링인 것이다. 무위자연 급의 퍼즐과 스토리의 결합이다. 거기서 추가로 더 파고들고 싶으면 키오스크에 직접 원하는 정보를 타이핑해 알아볼 수도 있고, 아니면 내버려두고 파워코어를 찾는 일에만 집중해도 된다. 반면 샤드라이트는 책방에서 몇 페이지짜리 역사책으로 배경 설정을 탐색할 수는 있지만 그뿐, 그 이상의 내용이나 퍼즐과의 결합은 없다.
선택과 결과 기법도 어설프게 적용되었다. 나는 이 기법을 도입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좋은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 작가가 공들여 쓴 하나의 스토리 라인과 공들여 마무리한 하나의 엔딩이 쓸데없는 멀티 엔딩보다 깊은 의미와 감동을 준다. 그러나 텔테임 게임즈(Telltale Games) 성공의 영향인지 게임 플레이에 별 영향도 미치지 않는 지문 몇 개 만들어놓고 '선택과 결과'로 위장하는 수법이 유행하는 것 같다. 이 점에서도 프리모디아와 비교된다. 프리모디아는 단순히 지문 선택에만 결과가 달린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퍼즐 풀이 방법과 능력에도 결과가 달렸다. 이런 것이 진정 의미 있는 선택과 결과이리라.
그럼에도 우제트 아이 게임즈다. 샤드라이트는 그간 그들이 선보인 게임에 비하면 여러모로 평범하지만 만듦새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무난하다.
평가: 평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