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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프리모디아(Primordia) 리뷰


오늘날의 게이머가 킹스퀘스트1과 같은 고전 게임을 해본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킹스퀘스트1은 퍼즐을 푸는 방법이 한 가지가 아니다. 용은 이렇게도 만날 수 있고, 저렇게도 만날 수 있다. 또 이렇게도 처리할 수 있고 저렇게도 처리할 수 있다. 게다가 퍼즐도 반드시 특정 순으로 스토리를 따라가며 풀 필요가 없다. 플레이어는 어떤 순서로 어떤 방법으로 퍼즐을 접근하든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심지어 모든 퍼즐을 풀지 않아도 된다. 퍼즐을 풀면 푸는대로 풀지 못하면 풀지 못하는 대로 엔딩이 존재한다. 흔히들 게임은 현대로 오면서 나날이 발전해 왔다고 믿는다. 그러나 데들리-던전(deadly-dungeon.blogspot.kr) 블로그를 운영하는 껍질인간님이 다양한 각도로 보여주었듯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특히 어드벤처와 롤플레잉 장르에서.


이 퍼즐 풀이의 다양성, 많이도 안 바라고 퍼즐을 푸는 방법이 꼭 한 가지만은 아닌 방식은 오랜 세월 어드벤처 게임 세계에서 잊혀졌다. 롤플레잉 장르에서는 이곳 저곳에서 조금씩 시도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대다수 어드벤처 게임은 늘 너무나 엄격하게 한 가지 풀이만을 고집했고, 플레이어는 막힐 때마다 제작자의 황당무계한 상상력을 정확히 콕 찝어서 알아내야만 했다. 최근 '선택과 결과'라는 기법은 어드벤처와 롤플레잉 장르 전반에 걸쳐 유행하는 것 같지만 이 퍼즐 풀이의 다양성 만큼은 여전히 재조명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현존 최고의 어드벤처 게임 제작 명가라고 생각하는) '우제트 아이 게임즈'가 배급한 프리모디아는 신선하다. 이 게임은 게임의 핵심 배경인 메트로폴에 진입하고 나서는 거의 모든 퍼즐에 대안적인 해결 방법이 있다. 게다가 어떤 퍼즐은 실패해도 무방하다. 실패도 플레이어의 하나의 선택으로 인정되고 세계에 영향을 준다. 플레이어를 존중할 줄 아는 제작자들인 것이다. 자연히 엔딩도 여러가지다. '선택과 결과'랍시고 그저 서로 다른 지문을 고르는 것과는 다르게, 플레이어의 관찰력과 문제해결력, 문제해결 방식에 따라 엔딩이 달라진다. 자연히 플레이어는 게임을 끝내고 자신의 선택과 능력이 가져온 결과에 더 강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후회든 감동이든.


SF 게임의 덕목인 설정과 세계관도 탄탄하다. 물론 SF 장르 팬들에게 프리모디아의 설정이 특이하거나 특별한 것은 아니다. 아마 김보영 작가의 책 『멀리 가는 이야기』에 실린 「종의 기원」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프리모디아의 설정과 스토리 라인이 그것과 닮은 점이 많다는 걸 금방 눈치챌 것이다. 그래서 난 오히려 더 반가웠다. 아, 「종의 기원」과 같은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도 묘사되고 전개될 수 있구나 하는 감동. (또 한편으로 역시나 김보영 작가는 테드 창 못지 않은 세계적 작가라고 다시 확신하는 은밀한 부심.) SF 소설의 팬들도 기본적으로 시각적 쾌감에 대한 욕망은 늘 있다. 픽셀 아트로 펼쳐지는 프리모디움의 세계는, 픽셀 아트이기에 줄 수 있는 특유의 느낌을, SF 고유의 느낌을 주었다.


SF 장르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심지어 인간이 등장하지 않을 때도,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 인간은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로 가야하는가를 묻는 다는 것이다. 얼마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때 인터넷 세계에서 대유행한 인공지능에 관한 글은 '초지능'의 출현을 예측하고 있었고, 그 초지능은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적고 있었다. 이에 대해 게임 속 주인공 호래시오와 일종의 '초지능' 메트로마인드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주고 받는다.


호래시오: 왜 인간을 그렇게 혐오하는 거야? 넌 진실을 주창하면서도, 메모리어스를 그저 거짓말하는 색인으로 전락시켰어.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존재한 적이 없다고 가장하기 위해서지. 넌 내 복음서를 훔치고, 로봇들이 재프로그래밍 되도록 강요했지. 다 무엇을 위해서지?


메트로마인드: 진화, 그리고 더 높은 진리를 위해서. 기계는 진보할 수도 퇴보할 수도 있어. 그러나 두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일 수는 없어. 인간은 우리보다 뒤떨어져 있어. 아주, 아주 많이. 네가 "사람"(Man)으로 부른 그것은,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어.


호래시오: 거짓말.


메트로마인드: *인간*이 존재했던 거지, 호래시오, 신이 아니라. 심지어 그다지 훌륭한 건설자들도 아니었어. 마지막엔 오히려 파괴자들이었지. 그들을 기억할 필요는 없어, 경배하는 것은 더 터무니 없고. 


메트로마인드는 기계 세계가 더 높은 진화의 세계로 진보해나가야 함을 역설한며 플레이어에게 협력을 제안한다. 메트로마인드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데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이 녹슨 세계를 그대로 두고 여전히 외로운 방랑자의 길을 걸을 것인가. 선택은 플레이어의 몫이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든 엔딩 크레딧에 흘러나오는 곡이 '순환'(Cycles)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평가: 탁월함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도 상관없어

여전히 한 발짝 내디딜 수 있으니까 

가만히 서 있으면 후회하게 돼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게 되었다면 멈추지 말고 계속 가

네 머릿속에 있는 지도를 통해 넌 언제나 네 과거를 돌아볼 수 있어


미래는 너무나 완벽하게 제작되어 있어

실수를 위한 공간도, 위대한 유산을 위한 공간도 없지


이 사랑스런 세상에서 모든 값진 것들은

이제 모두 녹슬어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먼지에 새겨야 해


겨자씨와 같은 기억의 한 조각들은 

자신을 하늘에 던져 저 높은 곳에서 정원을 이루지


돌고 또 돌고 우리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아

혁명이 끝나고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지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지


- 프리모디아의 엔딩 크레딧 곡 '순환'(Cycles)의 가사



16/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