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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킹스 퀘스트 2015 리뷰(King's Quest 2015)


https://youtu.be/eq-Fz4S1A2E


(아직 모든 챕터가 공개되지 않은 게임을 리뷰하는 것이 조금 공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일단 리뷰를 남긴다. 이 리뷰는 챕터3까지 완료하고 작성하였다.)


처음 인상은 좋지 않았다. '아니! 킹스 퀘스트가 무슨 툼 레이더가 되었나?'란 생각이 들었다. 시덥지 않은 액션의 요소는 강화되고, 퍼즐은 약화된 것으로 보였다. 유머는 과장되어 보였고, 컷신은 너무 많았다.


그러나 플레이하면서 그런 생각은 차츰 누그러지다가 챕터1 후반부에 가서는 나도 모르게 빵 터지곤 하는 나를 발견하였다. '어? 이거 재밌네.' 


킹스 퀘스트 2015는 기본적으로 할아버지가 된 그래햄이 손녀에게 자신이 젊었을 때의 활약상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처럼. 처음에 플레이어는 이를 단순히 동화적 느낌을 강화하고 나레이션을 그럴듯하게 삽입하기 위한 장치쯤으로, 혹은 튜토리얼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한 장치쯤으로만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플레이가 진행될수록, 즉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그래햄의 과거 행적이 현재 지금 이 순간과도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게임은 거의 모든 순간 플레이어에게 세 가지 다른 윤리적 길을 제시한다. '용기의 길', '자비의 길', '지혜의 길'이 그것이다. 어떤 선택을 순간 순간 내렸느냐에 따라, 마을 사람들의 반응도 달라지고, 그래햄의 별칭도 달라지고, 퍼즐의 순서도 달라지고, 드래곤의 운명도 달라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이야기를 옆에서 전해 듣는 손녀의 정신세계와 행동이 달라진다. 


나는 이 부분에서 감탄했다. 아이에게 들려주는 동화의 스토리를 플레이어가 직접 만들어나가고, 그 스토리에 따라 아이의 세계가 달라진다니. '킹스 퀘스트'에 참 잘 어울리는 방식으로 '선택과 결과' 기법이 적용된 것이다. 사실 챕터1에 적용된 '선택과 결과'는 훌륭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얕게 적용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결국 발생하는 이벤트는 대동소이하고 해결해야 할 퍼즐도 동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녀가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반응하는 방식을 보고 나는 불만의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챕터2에 나는 더 놀랐다. 스팀 유저 평가에 가보면 챕터2에 대한 악평이 가득하다. 간혹 있는 좋은 평가들도 챕터2가 챕터1에 비해 형편없지만 그럭저럭 할 만했다는 식의 의견이 많다. 새로운 스토리 라인이 없다는 등, 챕터1 등장 인물들이 반복해 등장한다는 등, 챕터1은 참 아름다운 광경이어서 좋았는데 챕터2는 그렇지 않다는 등, ···. 그러나 게임 플레이 면에서 챕터2는 고전 '킹스 퀘스트'를 멋지게 현대적으로 부활시켰다. 나는 게임 <프리모디아>의 리뷰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오늘날의 게이머가 킹스퀘스트1과 같은 고전 게임을 해본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킹스퀘스트1은 퍼즐을 푸는 방법이 한 가지가 아니다. 용은 이렇게도 만날 수 있고, 저렇게도 만날 수 있다. 또 이렇게도 처리할 수 있고 저렇게도 처리할 수 있다. 게다가 퍼즐도 반드시 특정 순으로 스토리를 따라가며 풀 필요가 없다. 플레이어는 어떤 순서로 어떤 방법으로 퍼즐을 접근하든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심지어 모든 퍼즐을 풀지 않아도 된다. 퍼즐을 풀면 푸는대로 풀지 못하면 풀지 못하는 대로 엔딩이 존재한다. 흔히들 게임은 현대로 오면서 나날이 발전해 왔다고 믿는다. … 꼭 그렇지많은 않다."

- <프리모디아> 리뷰 중, http://anicca.tistory.com/23


킹스 퀘스트 2015 챕터2도 그렇다. 일단 선택과 결과가 챕터1과 달리 (굳이 손녀를 따지지 않더라도) 정말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일단 모두를 구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스터 팬시케이크를 살리면 마을 사람 중 하나를 못 살리고, 마을 사람을 모두 구하면 미스터 팬시케이크를 살릴 수 없다. 마을 사람 모두 구하기는 어디 쉬운가? 플레이어는 제한된 자원과 제한된 시간만을 갖기에 아무런 실시간적 시간 압박이 없음에도 언제 음식을 먹고 누구에게 남은 식량을 주어야 할지 크게 고심할 수밖에 없고 심리적으로 쫓기게 된다. 결국 플레이어의 능력이 딸리면 (대사 지문을 아무리 훌륭히 골랐어도) 마을 사람 중 누구 하나는 (혹은 둘은) 감옥에서 굶주려 실려나가게 된다. 그렇다고 게임 오버가 되는 것은 또 아니다. 실패는 최종적인 것이 아니다. 단, 받아들여야 하고, 거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 모험은 계속되어야 한다. 


나는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AAA급 타이틀로 등장한 '킹스 퀘스트'가 이렇게까지 고전 '킹스 퀘스트'를 예우하고 그 정신을 보전·계승할지 상상치 못했다. 사소한 부분으로 들어가 봐도, 챕터2는 동화의 패러디라는 킹스 퀘스트의 전통을 상황과 퍼즐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재현하고 있다. 다른 챕터들도 마찬가지다. 고전 킹스 퀘스트의 팬이라면 한번쯤 피식 웃거나 추억에 잠길 만한 반가운 요소들이 곳곳에 활용되고 있다. 


내게 약해 보이는 부분은 챕터3다. 킹스 퀘스트 팬들에 의하면, 이 챕터3도 '킹스 퀘스트 2'에 있던 공주 찾기 프로젝트의 현대적 재해석이라고 한다(나는 킹스 퀘스트 2를 해보지 않았다). 나쁘지 않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플레이 했지만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미소녀 연애 시물레이션(미연시)과 같은 구성이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각 챕터가 분위기나 게임 플레이 방식에서 상당히 서로 다른 경험을 준다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다. 그냥 스토리의 앞 부분부터 차례로 챕터1, 2, 3, … 으로 잘랐을 뿐인 평범한 게임도 많으니.


이런 생각을 했다. 어린 시절 '킹스 퀘스트'를 하며 자란 어른들이 자식이나 조카, 아이들과 함께 이 게임을 즐긴다면 어떨까? 과거 어른들이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준 것처럼, 오늘날 그 역할을 어드벤처 게임이 맡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야기는 아이의 세계를 지배한다. 그래햄의 모험담이 손녀를 바꾸어 놓듯이.


훌륭한 부활이다. 다만 걱정인 것은 큰 예산이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이 게임이 과연 얼마나 성공을 거둘지다. 소싯적 <킹스 퀘스트>를 즐겼던 어른들은 당장 한 카피 사자. 그렇지 않았던 새로운 세대의 게이머들도 <킹스 퀘스트>의 명성을 직접 확인해보자.


평가: 기대 이상


16/07/04


스팀(steam): http://store.steampowered.com/app/345390/

(주의: 시즌패스를 사면 안 되고, 컴플릿 콜렉션을 사야 한다. 에필로그가 후자에만 포함된다.)


[영어로 게임하자!] 킹스 퀘스트 2015 힌트만 알려주는 공략, 챕터2[1](King's Quest 2015)

[영어로 게임하자!] 킹스 퀘스트 2015 힌트만 알려주는 공략, 챕터3[#1](King's Quest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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