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

더 라스트 도어 시즌2 리뷰(The Last Door - Season 2)


<더 라스트 도어 시즌 2>의 에피소드1을 진행하다 보면 얼핏 이 작품은 시즌1에서 규모만 더 커졌을 뿐인 리바이벌로 보인다. 분명 탐험할 수 있는 장소도 더 많아졌고, 그에 따라 퍼즐도 제법 더 많아져 약간 비주얼 노벨 같았던 시즌 1보다는 더 정통 어드벤처 게임에 가깝다. 그런데 규모를 빼면 테마는 비슷하다.


시즌 1의 주인공 제레미아 데빗의 의사였던 웨이크필드가 시즌 2의 주인공이다. 어느 시점부터 웨이크필드를 추동하는 힘은 더는 자신의 환자에 대한 책임감이 아니다. 그를 추동하는 힘은 앎에 대한 욕망이다. 사건을 파헤치다 만난 한 전직 대위와의 만남에서 대위와 웨이크필드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대위: 당신은 당신이 지금 뭘 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당신은 지금 당신이 뭘 파헤치고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하지. 꺼져, 그리고 이 일은 잊어.

웨이크필드: 전 제가 찾는 답을 얻기까지는 떠나지 않을 겁니다. 말해주세요.

대위: 하, 빌어먹을. 좋아. 당신 인생 당신이 망치는 건 자유지.


데빗도, 대위도, 웨이크필드도 어느 순간부터 멈출 수가 없다. 환영인지 실재인지 모를 곳에서 나타난 데빗은 웨이크필드에게 묻는다.


말해봐. 왜 이러고 있는 것이지? 환자를 걱정해서인가? 아니면 과학적 호기심때문인가? 자부심때문인가? 전문가로서의 책임감때문인가? 아니면 이것이 바른 일이어서인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멈출 수 없다면 '그 무엇'이 강제로 멈추게 하니까. 세상에는 허락되지 않은 것들이 있고, 그 허락되지 않은 것들에는 우리에게 끝내 어느 선을 넘지 못하도록 굴복케 하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위의 말처럼 일단 '용의 입'으로 들어가보길 원한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시즌 2의 에피소드가 하나 하나 진행되면서 플레이어는 시즌 1부터 진행된 에피소드마다 얼핏 연결고리가 약해보였던 부분들도 사실은 다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날수록, 이 게임의 세계관이 그리 만만하지 않음을 알게 되고 웨이크필드가 추적하는 사건의 진실도 그저 무서운, 그러나 몹시 호기심이 이는 '어떤 것' 수준이 아님을 알게 된다. 웨이크필드의 멘토 카우프만이 웨이크필드에게 극도의 신중함으로 인내를 갖고 용기있게 나아가라고 주문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데빗이 시즌 1 에피소드 4에서 직접 혈청을 맞아가며 '용의 입'으로 제발로 들어선 것도 이유가 있었다. 여기에는 단순히 '앎에 대한 욕망'을 뛰어넘는 무엇이 있다.


게임은 현명하게도 마지막에 우리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상기시킨다. 사실 이 선택권은 웨이크필드 앞에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미 데빗에게도 주어졌던 바이며, 그리하여 데빗은 앞서 선택한 자이고, 웨이크필드를 인도해준 자이다. 데빗은 단순히 지적 욕망의 수동적 희생자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도 그렇다.


지식의 궁극을 향해 달려드는 인간의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거기에 대가가 따르며 우리는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만큼이나 그것이 우리를 구속하는 힘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한 면만을 선택할 수 없다. 언제나 '자연스럽게' 그 반대쪽 면은 자신의 힘을 보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게임의 마지막에서 금단의 지식은 또한 금단의 권능과도 관련이 있음이 암시된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게임은 오컬트적 세계를 통해 역설적으로 과학적 세계에 사는 21세기의 우리들에게 묻는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하는가.

아니면 어떤 진리는 오히려 우리를 속박하고 파멸로 이끄는가.


마지막에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자신이 게임 속 커튼 앞에 서 있다고 상상하고 결정해보자.

커튼 뒤로 향할 것인가, 멈출 것인가.


플레이어에게는 선택의 권능이 주어져 있다. 선택의 지점까지는 웨이크필드가 그랬듯이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조력자가 영원히 우리 곁에 있을 수는 없다.


선택의 순간 언제나 우리는,

혼자다.


평가: 기대 이상


16/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