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러 현대 어드벤처 게임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들에는 루카스필름 게임에 존재했던 매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도 그 매력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그 매력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다. ′잠깐, 그러면 우리가 그런 게임을 다시 하나 만들어볼까?′"
- 론 길버트, 팀블위드 파크의 개발자
전설이 돌아왔다. 게임을 켜는 순간 이곳이 고향임을, 이곳이 어릴적 마음껏 뛰놀고 꿈을 키우던 그곳임을 냄새로 느낄 수 있다. 매니악 맨션과 원숭이 섬의 비밀의 제작자 론 길버트가 새로운 어드벤처 게임 ′팀블위드 파크′(딤블위드 파크 또는 심블위드 파크, 뭐든)로 돌아왔다.
『에단 카터의 실종(The Vanishing of Ethan Carter)』 제작자는 어드벤처 게임의 핵심 매커니즘은 재미가 없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매커니즘의 약점을 극복하고 훌륭한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모험러의 '블랙웰 레가시' 리뷰 중).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하지 않게 된다.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어드벤처 게임의 핵심 매커니즘이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이해가 되기는 한다. 정통 어드벤처 게임의 매커니즘은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보장해주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슈팅은 후져도 쏘는 재미는 보장될 수 있고, 롤플레잉은 후져도 성장하는 재미는 보장될 수 있으며, 플랫포머는 후져도 타이밍 맞추어 뛰는 재미는 보장될 수 있고, 로그라이크는 후져도 한 번의 목숨이 주는 재미는 보장될 수 있다. 그러나 어드벤처 게임은 게임 아트, 스토리, 캐릭터, 대사, 퍼즐 어느 하나만 후지거나 삐걱거려도 게임 전체가 망가져 보이고 지루해진다.
그러나 반대로 그 모든 요소가 잘 어우러졌을 때 어드벤처 게임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 예술적으로 보이고 작가의 정신이 강하게 느껴진다. 누군가의 손에서는 뛰어난 예술품이 탄생하는 도구(매커니즘)를 두고 그 도구에 결함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루기 극히 까다로운 도구라 칭하는 것이 더 공정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한 번 휘둘러보지도 못하지만, 누군가의 손에서는 엄청난 잠재력을 뽐낼 수 있는 그런 도구. 때문에 세계적으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도구를 가지고 훌륭한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된다.
어쨌든 바로 그 극소수에 속하는 사람이 돌아왔다. 어드벤처 게임은 이렇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몸소 보여주기 위해. 매커니즘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였음을 보여주기 위해. 왜 수많은 사람들이 루카스아츠 어드벤처 게임을 흉내냈지만 그 맛을 못냈던 것일까? 답은 간단한 곳에 있었다. ′그′ 사람이, 론 길버트가 없었던 것이다(이것은 수많은 미스트 클론이 나왔지만 아무도 밀러 형제가 만든 미스트의 느낌을 주지 못한 것과 같다). 론 길버트가 다시 돌아와서야 그 맛이 돌아왔다. 나사빠진 유머들을 어디다 배치해야 할지, 플레이어를 어디서 어떻게 농락해야 할지, 어디에 함정을 설치해 난처하게 할지, 어디서 플레이어의 관찰력과 지력을 시험해야 할지, 어디서 플레이어의 예측을 비웃어야 할지, 그의 손맛이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고 고전 게임의 팬들과 어드벤처 매니아들만을 위한 게임은 아니다. 분위기와 유머, 스토리 중심으로 느끼고 싶으면 캐주얼 모드로 하면 된다. 적당히 퍼즐의 맛을 느끼면서도 충분히 재밌다.
옛날 그 느낌 그대로 플레이해보고 싶거나, '어드벤처 게임을 즐기는 것보다 인생에 더 중요한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면 하드모드를 즐기면 된다. 체감상 3배는 더 어려웠다. 캐주얼 모드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지역과 아이템도 여럿 있다. 그렇다고 퍼즐이 불합리해서 어려운 것은 아니다. 어렵지만 분명히 도처에서 힌트는 모두 제공하고 있다. 다만 캐주얼 모드처럼 힌트가 직접적인 방식으로 제시되지는 않기에, 대사, 문구, 캐릭터의 행동 하나하나를 아주 날카롭게 관찰해야 한다. 아무 이유 없어 보이는 장면에도 다 이유가 숨어 있다. 사실 이젠 나도 쉬운 퍼즐을 지지하고 인벤토리 퍼즐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하드모드 퍼즐의 품질이 뛰어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 정도 난이도의 퍼즐도 오늘날에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 플레이, 캐릭터, 대사, 픽셀 아트, 보이스 액팅 모두 훌륭하지만, 특히 스토리에 대해서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 오직 게임에서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모습에 감탄했다. 시에는 시적 허용이 있는 것처럼, 어드벤처에도 어드벤처적 허용이 존재한다. 마을 사람은 몇 명 안되는데 전화번호부에는 수백명의 사람이 있어도, 뻔히 눈에 보이는 장소인데 갈 수 없어도, 다른 말을 하고 싶은데 특정 대사만을 고를 수 있어도, 우리는 게임 제작자와 암묵적 협정을 맺고 그것을 받아들여 그 룰 안에서 게임을 풀어나간다. 팀블위드 파크가 우리 모두가 지난 수십년간 어드벤처 게임에서 아무 말 없이 받아들였던 이 ′암묵적 허용′을 게임 플레이와 스토리의 소재로 삼고 비틀기를 감행한 것은 굉장했다. 감히 론 길버트쯤되는 어드벤처의 마스터가 아니고서는 그것을 이렇게 정통 어드벤처의 틀 안에서 재미있는 방식으로 시도해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스탠리 패러블 같은 사례도 있지만 팀블위드 파크와는 지향이 다르다).
요즘 과거 명작 게임을 만들어냈던 흘러간 용사들이 속속 게임판으로 복귀하고 있다. 디지털 배급의 확산으로 소수의 강력한 팬층만 있어도 다시 게임을 내볼만한 여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누가 진짜 거장이었는지 누가 그저 한때의 거물에 불과한 올드보이였는지 옥석이 가려지고 있는 것 같다.
론 길버트는 진짜였다. 원숭이 섬의 비밀이 언제적 원숭이 섬의 비밀인가. 하지만 그의 감각은 여전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팀블위드 파크가 성공하면 더 깊은 레벨 디자인과 위험이 따르는 시도를 어드벤처 게임에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론 길버트]원숭이 섬의 비밀과 매니악 맨션의 제작자가 돌아오다!"). 부디 팀블위드 파크가 성공해서 그가 새로운 어드벤처 게임을 꾸준히 만들어 내는 축복이 있기를.
평가: 탁월함
17/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