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어드벤처의 시대가 저물고 그래픽 어드벤처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퍼즐의 깊이가 얕아졌다는 비판이 있다. 이 사태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것은 그래픽 어드벤처가 채택한 ′포인트앤클릭′ 인터페이스다. ′포인트앤클릭′ 인터페이스는 처음에는 텍스트 어드벤처에 있던 주요 동사를 화면에서 고르는 정도의 기능이었다가, 나중에는 클릭 하나로 모든 게임 속 상호작용이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때문에 적절한 명령어(동사) 찾는 것부터가 하나의 숙제였던 시절보다 그 부분에서 난이도가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텍스트 어드벤처 최전성기의 게임을 이제야 막 태동하던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처 게임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그래픽과 사운드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포인트앤클릭 방식으로도 어떻게 의미있는 퍼즐과 게임플레이를 구성할까 수많은 고민과 시도가 있었다. 그 결과 시에라의 여러 퀘스트 시리즈, 루카스아츠의 룸, 매니악 맨션, 원숭이 섬의 비밀, 풀 스로틀, 그림 판당고 등 이름만 대면 아는 수많은 그래픽 어드벤처 장르의 명작이 탄생했다.
그럼에도 분명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에는 텍스트 어드벤처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어떤 퍼즐 구성과 경험은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건 반대도 사실이다. 텍스트 어드벤처로는 절대 구성할 수 없는 퍼즐과 경험이 있다. 아니, 이쪽이 ′더′ 사실이다. 그래픽 어드벤처 장르는 텍스트 어드벤처 장르의 방식을 (어느 정도는) 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드벤처 장르의 새로운 명가 ′우제트 아이 게임즈′에서 나온 레조넌스(Resonance) 같은 게임을 해보라. 거기선 직접 정보를 타이핑하여 검색하고 추출하는 퍼즐이 등장한다. 그러나 텍스트 어드벤처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오늘 리뷰하는 게임 아마니타 디자인(Amanita Design)의 사모로스트가 줄 수 있는 경험을 포용할 수는 없다.
그동안 대부분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처 게임의 방점은 당연히 ′어드벤처′에 있었다. 포인트앤클릭이야 하나의 도구이자 기능일 뿐이므로 그 나머지인 그래픽, 스토리, 연출, 대사 등에 많은 역량이 투여되어 왔다.
그러나 사모로스트의 방점은 ′포인트앤클릭′에(도) 찍혀있다. 개발사 아마니타 디자인은 ′포인트′하고 ′클릭′하는 행위에 주목해 그것을 거의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 포인트하고 클릭하는 것에 따라 새가 지저귀고 벌레가 울고 생태계가 움직인다. 그것이 퍼즐의 단서과 되기도 하지만, 퍼즐 운운 하기 이전에 포인트하고 클릭하는 것에 반응하는 세계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된다. 때문에 게임 속 화면은 그저 정적인 배경화면이 아니라 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예술 작품으로 보인다.
아마니타 디자인(Amanita Design)이 선보이는 이러한 세계는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처 장르의 혁신이다. 풀 스로틀, 그림 판당고의 제작자로 유명한 어드벤처의 거장 팀 샤퍼 역시 최근 인터뷰에서 지난 몇 년간 플레이한 어드벤처 게임 중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아마니타 디자인에서 나온 게임이며 ′브로큰 에이지′도 머쉬나리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고백한 바 있다.(http://www.adventuregamers.com/articles/view/32545/page4)
물론 아마니타 디자인이 선보인 혁신이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미스트가 대사나 인벤토리 퍼즐 등을 최소화하고 관찰과 반응만으로 세계의 작동원리와 내러티브를 제공하는 게임 플레이 방식을 선보여,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처 게임의 신기원을 이룬 바 있다. 아주 넓게 보면 아마니타 디자인도 이 미스트 라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루카스아츠류 어드벤처 게임의 일부 팬들이 아주 싫어하던. 하지만 아마니타는 그냥 아마니타 라인의 창시자로 부르는 것이 더 적당할 것이다. 아마니타는 확고한 스타일이 있다. 그리고 스타일은 게임 업계에서, 아니 예술 분야에서, 누구가 가장 얻고 싶어하는 것이지만 가장 갖기 어려운 것이다.
사모로스트3가 아마니타 디자인이 낸 가장 최신 게임이지만 그들이 낸 최고의 게임은 아닌 것 같다. 아직까지 최고는 머쉬나리움(Machinarium)이라 생각한다. 머쉬나리움은 사모로스트 1, 2의 플래시게임스러움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대사 없이 독특한 아트와 음향 효과만으로 완전한 서사와 흥미로운 게임플레이를 선보일 수 있음을 보인 어드벤처 장르의 역작이었다. 아마니타 디자인이 껍질을 하나 깨고 내공을 폭발시켜 새로운 경지로 올라선 느낌이었다. 그 후속작 보타니쿨라(Botanicula)는 아름다운 게임이었으나 약간 다시 사모로스트 1, 2의 라인으로 회귀한 인상을 주었다. 사모로스트3는 머쉬나리움과 보타니쿨라의 중간쯤 되는 것 같다.
이들이 사모로스트3와 같은 좋은 게임을 내놓으며 여전히 더 많은 역량을 축적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들이 다음 번엔 또 어떤 아름다운 세상을 선보일지 기대된다.
평가: 괜찮음
17/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