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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블랙웰 디셉션(The Blackwell Deception) 리뷰


블랙웰 시리즈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시대의 변화가 게임 플레이에 반영되는 방식이다. 듣기로는 게임의 배경인 뉴욕의 변화도 게임 디자인에 반영되어 있다는 데 그것은 뉴욕의 변천사를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뉴욕을 가보았거나 좀 아는 사람이라면 게임 곳곳에 나오는 뉴욕의 경관들을 알아볼 수도 있으리라.


첫 작품인 블랙웰 레가시가 2006년, 언바운드가 2007년, 컨버전스가 2009년, 지금 다루는 디셉션이 2013년에 출시되었다. 2013년이면 스마트폰이 완전히 대중화된 시대다. 뉴욕의 70년대를 다루는 언바운드가 전화번호부를 퍼즐의 핵심으로 삼았다면, 구글이 검색시장을 평정한 시대에 나온 컨버전스는 '우글' 검색을 퍼즐의 핵심으로 삼았다. 이번 디셉션에서는 스마트폰 활용이 퍼즐의 핵심이다. 노트의 정보를 조합하여 새로운 단서를 얻는 기능도 스마트폰 기능에 통합되어 다시 돌아왔다.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거는 것도 퍼즐에 이용된다. 전화+검색+메모를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하는 세상에 맞추어 게임 플레이도 그에 맞게 진화한 것이다. 


전작에 비해 퍼즐도 더 다채로워지고 난이도도 소폭 상승했다. 덩달아 전작들이 2시간 정도면 엔딩을 볼 수 있었던 것에 비해 분량도 4시간 정도로 늘었다. 그렇다고 어려운 수준은 아니다. 어마어마하게 기발한 퍼즐은 없지만 대부분의 퍼즐이 단서들을 곰곰히 생각해보고 정보를 잘 조합하고 추리하는 능동성을 요구한다. 어드벤처 게임들에는 어렵지만 후진 퍼즐들도 얼마든지 많은데 이 게임의 퍼즐들은 쉽지만 대체로 훌륭하다. 어드벤처 게임 특유의 재미 요소 '아하!' 하는 요소를 잘 살렸다.


전반적인 도트 그래픽의 수준은 전작과 비슷하거나 조금 나아졌다. 인물 초상화가 최초 버전에서는 최악이었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나는 바뀐 버전으로 플레이하였다. 훌륭한 목소리 연기, 배경 음악 등도 여전하다. 로이와 조이를 서로 번갈아가며 플레이할 수 있는 것도 여전한데, 서로의 눈에 사물이 어떻게 다르게 비치는지 확인하는 것도 재밌다. 깨알같은 유머가 곳곳에 숨어 있다. 


스토리의 전개 방식은 전작과 유사하다. 로사와 조이는 일련의 살인사건을 추적해 나가다가 그 사건들 뒤에 숨은 더 깊은 내막을 알아가게 된다. 이제 조이의 과거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로사가 맡고 있는 영매 일에도 어떤 비밀과 내막이 숨겨져 있음이 암시된다. 시리즈가 종반부로 치닫으면서 게임은 점차 블랙웰 유니버스의 중심부로 진입하고 마지막 작품 <블랙웰 에피퍼니>를 예고한다. 


모든 사건의 배후에 있던 악당은 말한다.


"그들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모든 잠재력이 있었어. 그러나 그들은 그 힘을 낭비했고, 탕진했지. 그래서 나는 그들의 모든 긍정적 에너지를 내게 끌어왔지. 그들이 그 에너지를 쓰지 않겠다는데, 왜 내가 쓰면 안 되겠는가? 자신의 행복을 내팽개친 채 살아가는 사람들, 나는 단지 그들을 도울 뿐이야."


박민규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사람들이 (타인을) '부러워하고',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양극단을 오가며 자신의 빛을 연예인과 같은 타인에게 몰아준다고 말했다. 연예인들이 빛나는 것은 사실 우리 자신의 빛을 너무 그들에게 몰아주어서 일지 모른다.


희생자들은 모두 행복하지 않았다. 로사는 그들을 떠올리며 자신을 돌아본다. 분명 남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공허하다. 왜일까? 조이는 답하지 못한다. 어쨌든 앞으로 나갈 뿐이다. 이제 대망의 마지막 작품 <블랙웰 에피퍼니>로 달려갈 시간이다. 


게임 길이: 약 4시간

평가: 기대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