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는 최고 수준의 인터랙티브 무비 게임입니다.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로 가장 유명한 시리즈는 텔테일 게임즈가 만든 워킹데드일 것입니다. 이 장르는 게임 플레이는 대폭 축소하고 영화와 같은 연출로 승부를 보는 장르이기 때문에 결국 영화처럼 시나리오와 연출의 완성도가 곧 게임의 완성도를 결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와 다르게 플레이어의 선택이 반영된다는 점도 다릅니다. 그렇다면 플레이어의 선택에 게임 속 세계가 얼마나 다르게 반응하느냐도 평가 요소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선택과 결과는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가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요소임에도, 사실 거의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개는 선택의 환상만을 줄 뿐이죠. 때문에 저는 선택과 결과에 큰 기대가 없습니다. 이 요소에 큰 비중을 둔다면 최근 텔테일 게임즈의 게임들은 크게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는 그것보다는 낫습니다. 선택에 따른 결과가 제대로 구현되었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는데 그건 조금 뒤에 다루겠습니다.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는 일단 눈이 즐거웠습니다. 게임 속 풍경과 미술이 하나같이 훌륭했습니다. 영화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캐릭터들의 표정과 움직임도 훌륭합니다. 다만 말을 할때 입술의 싱크가 안 맞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저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에피소드5의 특정 부분에서는 캐릭터는 말을 하는데 아예 입술이 움직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건 몰입감을 깨는 요소입니다.
미국 10대 문화를 구경하는 것도 한 재미입니다. 물론 그것이 미국 고등학교 문화의 전형은 아닐 것입니다. 누군가 한국 드라마 ′학교′를 보고 그것이 한국의 전형적인 학교문화라고 생각한다면 오류가 클 것이듯,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를 보고 그것이 미국의 전형적인 학교문화라고 생각한다면 어긋나는게 많을 것입니다. 다만 학교든,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든, 그 행간에서 10대 문화가 서로 어떻게 다른지 엿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10대들이 겪는 고민이나 문제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공통점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형식에서는 차이가 나는데, 그 차이를 구경하는 것이 재미입니다.
스토리는 자극적인 반전이 늘 기다리고 있는 전형적인 미드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반적인 분위기나 플롯은 영화 ′나비 효과′가 떠올랐습니다. 영화 나비 효과에서도 시간을 되돌릴 수록 뭔가가 꼭 하나씩 잘못되는데, 이 게임도 마찬가지로 시간을 되돌려서 뭔가를 바꿔놓을 수록 또 다른 곳에서 뭔가가 터집니다. 전반적으로 흐르는 우울한 느낌도 닮았습니다. 게임 후반부에 제퍼슨 선생님이 이 모든 사태에 흑막이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그리고 그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약을 먹이고 의식 불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진 찍는 걸 즐긴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이건 너무 작위적인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습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는 여자에게 청산가리를 먹여 그 죽어가는 광경을 사진으로 찍었던 사진사 사건이 있었습니다. 범인은 사형을 당했었죠. 이 사건이 떠오르자 게임 속 상황이 꼭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선택과 결과를 봅시다. 사실 게임 엔딩 보고는 조금 허무한 느낌이 들었는데, 게임 내내 선택할 때마다 이 선택이 당신의 미래를 바꿔놓을 거라고 그렇게 겁을 주더니 막상 뭐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을 뿐 아니라, 선택이 큰 의미가 없던 경우가 많아서였습니다. 하지만 케이트를 구하느냐 마느냐의 순간 만큼은 이 게임의 선택과 결과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자, 제대로 적용된 장면입니다. 플레이어가 무심코 했던 선택, 혹은 무심코 기억해놓았던 어떤 사실이 이 장면에서 케이트를 구하느냐 마느냐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플레이어의 사소한 선택이 큰 결과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가장 흡족한 부분이었습니다. 다만 이 장면 외에는 플레이어의 선택이 그렇게 의미가 있다고 느낀 장면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떻게 플레이했든 엔딩은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어느쪽 엔딩이든 비극적이고,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자세히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대체 왜 엔딩이 클로이를 살리느냐 해안가 사람들을 살리느냐 구도로 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많이 남지만, 어차피 제작진들이 노린 것은 논리적 정합성 보다는 감정적 충격입니다. 그러니 어느 쪽을 선택하든 뭔가 아쉽고 슬픈 느낌을 받았으면 그걸로 족합니다.
이 게임의 진정한 재미는 인물들간의 관계에 있습니다. 10대들의 질투, 관계, 고민, 갈등, 우정, 사랑, 이런 것들을 지켜보는 게 이 게임 재미의 핵심입니다. 때문에 시나리오의 정합성은 문제가 덜 됩니다. 대신 대사의 생동감과 묘사의 현실성이 크게 문제가 되는데, 바로 이 부분이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가 잘 해낸 부분입니다. 잘 해냈기에 우리는 게임 속 캐릭터들이 마치 살아있는 인물처럼 느껴지고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는 성공했습니다. 지금까지 해본 인터랙티브 무비, 혹은 비주얼 노벨스러운 장르 증에서 최고의 반열에 놓을 수 있을 것 갑습니다. 정점이라고 까지는 표현하지 않겠습니다. 선택과 결과라는 분야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미개척 상태이거나 초보적 수준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별점을 준다면 별4개를 주겠습니다. 그냥 후하게 5개 주려고 했는데, 얼마전에 플레이한 마찬가지로 비주얼 노벨스러운 장르였던 투더문이 떠올랐습니다.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가 투더문만큼의 정서적 감동은 없었기에 별 하나를 깍았습니다.
17/08/12
모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