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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블랙웰 언바운드(Blackwell Unbound) 리뷰

데들리 던전 블로그의 껍질인간님은 어드벤처 게임 『킹스퀘스트5』의 리뷰에서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처 게임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개인적으로 1990년은 어드벤쳐 게임의 역사에서 가장 큰 전환점을 맞은 해라고 생각하는데 루카스아츠가 Loom과 Monkey Island로 큰 파장을 몰고 왔으며 시에라까지 KQ5로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쳐에 동참함으로서 전통적인 어드벤쳐는 완전히 주류에서 물러나게 된다. RPG가 발더스게이트를 기점으로 과거와의 연결점을 잃은것과 마찬가지로 어드벤쳐도 이때를 기점으로 과거와는 단절된 새로운 장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인트앤클릭 인터페이스가 사용할수 있는 동사의 수를 극도로 제한함으로서 퍼즐의 깊이와 난이도를 대폭 하락시켰으며 플레이어의 상상력 마저 제한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주 요소였던 퍼즐의 힘이 약해짐으로인해 게임의 초점은 그래픽과 스토리로 옮겨갔으며 점점 더 게임의 본질에서는 멀어져갔다. 초기의 텍스트 어드벤쳐를 해보면 도저히 이게 같은 장르라고 볼수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변했다는걸 알수있을 것이다."

출처: http://deadly-dungeon.blogspot.kr/2010/01/킹스-퀘스트-5-kings-quest-v-absence-makes.html


이 포인트앤클릭 방식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는 여러 게임에서 여러 방면으로 시도되었다. 『원숭이섬의 비밀』 시리즈만 해도 단순히 어디 물건을 주어서 그것을 적당히 어느 곳에 사용하는 수준으로는 풀 수 없는 퍼즐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 게임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은 『미스트』 시리즈는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에서는 전혀 시도할 수 없는 환경과 소리, 기계의 역학, 세계의 거시적 움직임 등을 총체적으로 활용하는 퍼즐들이 나온다. 『머쉬나리움』, 『사모로스트』, 『보타니큘라』와 같은 아마니타 디자인(Amanita Design)이 내놓은 아름다운 포인트앤클릭 방식의 어드벤처 게임들도 텍스트 기반이었으면 전혀 선보일 수 없었을 상상력을 이용하여 재미와 감동을 준다. 


한편 포인트앤클릭 방식과 텍스트기반 방식의 장점을 섞어놓는 해결책도 가능하다. 『블랙웰 언바운드』가 그렇다. 이미 전작 『블랙웰 레가시』에서 우리는 노트에 적혀 있는 두 단서를 조합하여 새로운 단서를 도출해내는 시스템을 보았다. 아마도 이 시스템은 『디스크월드 느와르』에서 먼저 시도된 방식일 것이데, 블랙웰 언바운드에서도 계승되고 있다. 


블랙웰 언바운드에서 더 진보한 것은 바로 전화번호부 시스템이다. 전작 블랙웰 레가시에서도 컴퓨터를 이용해 단서를 검색하는 시스템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직접 텍스트를 입력하는 것은 아니였으며, 또한 게임의 사소한 일부분이었다. 그러나 블랙웰 언바운드에서는 전화번호부를 이용할 때 게임 중 얻은 정보를 직접 타이핑해야 하며, 이 시스템이 블랙웰 언바운드 퍼즐 시스템의 중추를 이룬다. 처음에는 얻어낸 정보만 잘 적으면 전화번호부에서 새로운 단서가 쉽게 도출되지만, 나중엔 이것도 비틀기가 존재해 플레이어는 퍼즐을 풀기 위해 약간의 숙고를 더 거쳐야 한다. 이로써 플레이어는 탐정이 된 것 마냥 사건을 추리하고 직접 해결하면서 기분이 고양되고 몰입감이 높아진다.  


물론 이 텍스트 입력 시스템과 단서 조합 시스템이 블랙웰 언바운드에서 매우 심도있게 적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쉽다. 그러나 과거 키워드 입력 방식의 롤플레잉 게임이나 어드벤처 게임도 그 시스템이 매우 심오하게 적용되어 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간단한 키워드라도 직접 알아내고 직접 적는다는 사실이 플레이어에게 게임 진행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느낌을 주어 특별한 체험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블랙웰 언바운드는 오늘날 어드벤처 게임이 고전 게임의 그 특별한 느낌들을 어떻게 가져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블랙웰 언바운드, 그리고 블랙웰 어드벤처 시리즈들은 고전 어드벤처 게임의 정신을 제대로 되살린 시리즈로 평가할 수 있다. 나는 『블랙웰 레가시』 리뷰에서 어드벤처 게임의 핵심 메커니즘은 재미없다라고 말한 『에단 카터의 실종』 제작자의 말을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사실 어드벤처 게임의 핵심 메커니즘은 재미있었던게 아닐까? 다만 우리는 무엇이 핵심인지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블랙웰 시리즈의 성공으로 <우제트 아이 게임즈Wadjet Eye Games>를 차린 제작자 데이브 길버트는 자신의 회사에서 퍼블리싱한 『리조넌스Resonance』와 같은 게임에서 위와 같은 텍스트 기반 시스템을 보다 풍부하게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한마디로 더 어렵게).


요즘 어드벤처 게임의 대세는 텔테임 게임즈의 『워킹데드』, 『울프 어몽 어스』, 『왕좌의 게임』 시리즈와 같이 미드와 같은 스토리에 선택과 결과를 약간 첨가하는 형태인 것 같다. 21세기 어드벤처 게임의 참된 진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블랙웰 시리즈와 같은 더 많은 추리, 더 많은 탐구, 더 많은 사색을 모색하는 게임들을 응원하고 지원해주어야 한다. 


블랙웰 언바운드의 핵심 사건은 두 가지이다. 이 두 사건은 서로 별개의 것으로 보이지만 게임이 진행되면서 두 사건의 연계가 드러난다. 둘 중 어느 것을 먼저 해결해도 상관없다. 이를 비선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 쪽이 막힐 때 다른 쪽을 살펴봄으로써 기분 전환은 가능하게 한다. 이는 막혔던 곳의 해결책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는데 은근히 도움을 준다. 색소폰 부는 유령 아저씨 사건의 경우에는, 이 사건을 해결하면 더 이상 아저씨의 근사한 재즈 음악을 들을 수 없어 아저씨와 고별할 때 아쉬운 마음이 절로 든다. 그 외에도 음악은 블랙웰 시리즈가 다 그렇듯 역시나 근사하다.


주인공 로렌의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감정 노동자들에게 감정 마비가 오듯이, 이승과 저승을 연결해주는 일에서 너무나 많은 험한 꼴을 본 그녀는 세상만사에 무감각해진다. 그러나 쿨한 겉모습 아래 그녀는 깊이 외롭다. '이번 한 개피만..' 담배를 꺼내물고 생각에 잠기는 그녀의 모습은 고독하다. 


게임 길이: 2-3시간.

게임 평가: 기대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