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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더 라스트 도어 시즌1 리뷰(The Last Door - Season 1)


과학, 종교, 사회, 경제, 정치 모든 곳에서 나날이 혁명이 발생하고 과학과 종교의 대립이 본격화 되었던 시대, 문명의 번영과 사회의 진보와 발전에 대한 무한한 믿음으로 신흥 중간계급 사이에서 지식에 대한 갈증이 폭발하던 시대, 그러나 동시에 유물론적 삶의 우울, 퇴폐, 염세, 권태, 비참이 교양있는 신사숙녀들의 영혼을 파고들기 시작하던 시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 1891년 10월 우리의 주인공 제레미아 데빗은 학창시절 친구 안토니 비치워스로부터 이상한 편지를 받게 된다.


내가 그간 본 모든 것들 후

내가 그간 행한 모든 것들 후

이제 나는 내 삶이 취하려고 하는 방향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네

난 이제 구원 밖에 놓이게 되었네

자네가 언젠가 나를 용서해주기만을 바라며

자네의 진실한 벗, 안토니 비치워스


그리고 편지에는 다음의 라틴어 구절도 적혀 있었다.


"videte ne quis sciat"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을 보라"는 말이다. 이는 편지를 보낸 안토니와 주인공이 학창시절 참여했던 비밀 모임의 모토였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한 주인공 제리미아 데빗이 친구 안토니의 집으로 향하는 것으로 게임은 시작된다.


'본다.' 이 게임의 핵심이다. 알려진 세계에 대한 지식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은 결국 알려지지 않은 세계, 알려지지 않아야 하는 세계, 바라보면 안 되는 세계까지 탐한다. 그래서 게임 속 비밀 모임의 모토는 "알지 못하는 것을 보라!"이다. 


그러나 본다는 것은 또한 보여지는 것임을, 나도 본 것을 기억하지만, 보여진 것도 또한 나를 기억함을, 내가 보는 것을 쫓듯이 보여지는 것도 나를 쫓을 수 있음을, 그들은 미처 알지 못했다. 한 번 바라본 미지의 그것은 그들 영혼을 잠식한다. 정신이 잠식당하고, 연민이 잠식당하여, 사람의 온기가 서서히 사라진다. 삶은 빛을 잃는다. 그러나 파멸의 와중에도 다시 한 번 저 장막 넘어 그 눈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이 들끊는다. 시선에 사로잡힌 것이다. 안토니가 경고한 것처럼 본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각인되는 것이다. 


학창시절 모임에서 "알지 못하는 것을 보라!"며 금기를 탐하던 그들이었지만, 주인공의 환영 속에 다시 나타난 그 모임의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눈을 보지마. 

가장 깊은 어둠이 그의 눈에 깃들어 있기에


늦었다. 독실한 신학자이자 성직자인 어니스트 신부를 모임에 받아들일 때 친구는 말했다.


우리는 '장막'(The Veil) 뒤를 넘어 탐구하려는 사람을 막을 수 없어.


금지된 것을 소망하는 인간은 결국 그 욕망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그의 믿음을 빼앗고 정신을 말살시킬지라도.


픽셀아트와 음악은 게임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조금 생각이 필요한 퍼즐은 에피소드 당 1~2개 정도로 이 게임은 약간 비주얼 노벨에 가깝다. 대신 근사한 비주얼이다. 비주얼 노벨이라면 비주얼 부분도 중요하다. 아니면 그냥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읽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어지간한 3d로는 아무리 그래픽이 좋아도 이 특유의 빅토리아스러운(?) 으스스한 느낌을 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스토리는 흥미롭지만 무언가 본격적인 부분을 '시즌 2'로 미룬 것은 이 작품을 시즌 2의 프롤로그로 전락시킨 것이다. 존중할 수 있는 결정이지만, 이 게임을 하나의 독립된 완결된 작품으로 기대하고 구매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다. 참고로 에피소드1은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플레이해볼 수 있다. https://thelastdoor.com/


평가: 괜찮음.


16/06/16